메타고 나서

한메(지리산) 밴샅골(뱀사골)에서 피아골로(11/15)

하늘꿈꾸미 2008. 11. 17. 18:21

한꿈새마을(반선)->밴샅골(돌돌골:뱀사골)->꽃핌재(화개재)->낫날봉(삼도봉)->임걸재(임걸령)->피아골->피밭(직전)마을

 


뱀사골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쩐지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뱀골이면 뱀골이고, 됫글말로 하려면 사곡이라고 하던지 어찌 뱀사골인가?

그런데 뱀사골이란 이름이 생기게 된 까닭이 몇 가지로 풀이된다고 한다.


하나는 1597해 해섬과의 싸움(정유재란)때 불타버린 돌칸(석실) 언저리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둘은 한메 노비탈(북사면)의 골짜기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굽어 흐른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다.


셋은 뱀사골은 뱀이 죽은 골짜기라는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뱀사골 들머리에 600해 앞에 솔숲절(송림사)이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선 곱달(칠월) 보름(백중)날 꿈새대(신선대)에 올라가 빌면 꿈새(신선)가 된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이 일을 야릇하게 여긴 어느 큰스님(서산대사)이 꿈새대에 올라 빌려는 스님의 옷에 몰래 명주실과 닻(독)을 매달아 두었다.

다음날 뱀못(뱀소) 언저리에 미르(용)가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고 하여 뱀사골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무기에 죽어갔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려 가웃(반)쯤 꿈새가 되었다 하여

뱀사골 들머리 마을을 가웃꿈새(반선)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는

한메나라놀이터노곳일터앞(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장)


넷은 뱀 이야기와는 달리, 비탈이 가파른 사이 골짜기란 뜻의 ‘밴샅골’이 바뀌어 뱀사골로 불리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배다3’에 몬의 사이가 비좁거나 촘촘하다는 뜻이 있다.

‘샅’이란 두 다리 사이나 두 몬 사이를 이르는 말이니, 비탈이 가파른 메 사이에 좁은 골짜기를 ‘밴샅’이라 할 수 있다.


살펴보건대, 뱀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고, 넷째 이야기가 맞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반선이란 마을이름도 伴이란 글씨가 ㉠짝 ㉡모실 ㉢의지하다 ㉣한가하다 ㉤따르다 는 뜻이 있는 것으로 모실은 마을이므로 꿈새(신선)짝이라든가 꿈새(신선)마을이 되어 꿈새같은 사람이나 꿈새가 사는 마을이라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무슨 이무기나 이무기에 먹혀 죽은 스님을 가웃꿈새로 하였다는 말이 맞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부처의 가르침은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것인데,

부처가 되려고 깨달으려는 스님이 꿈새(신선)가 되려고 빌었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둘째의 뱀처럼 흐른다고 해서, 뱀사라고 됫글씨 풀이와 소리를 넣어 이름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덟달 첫하루날과 이튿날에 한메(슬기메:지리산) 멧등을 타고 무당골(백무동)로 내려 온 뒤, 처음으로 골짜기를 오르게 되었다. 마흔 사람이 가는데 사람이 꽉 찬 뒤에 기다렸다가, 못 가는 사람이 나와 가게 된 것이다.

새벽에 한메 놀이터수렛마당에 이르러 누룽지 끓인 누른밥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5:10쯤 오르기 벌이었다(들머리 높이 480저자).

맑은 하늘에는 열여드렛달이 별과 함께 속삭이고,

가믐으로 줄어든 밴샅골 냇물이 밤의 고요를 깨고 또 먼 바다로의 나들이길을 잦추는데,

마흔 낱의 머리불들이 꼬리를 물고 한메의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어둠속을 앞 사람을 따라 시냇길로 간다. 

 

                                                                         다지님이 찍은 찌검

나무를 깔아 냇가에 길을 잘 닦아 놓았다.

가다가 쇳길도 만난다. 출렁다리도 있다.

한 참을 가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나뭇와 섞돌(시멘트)길인지 두 가지로 길을 깔아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해놓았다.

처음부터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이 길이 누운다리(와운교) 못미쳐 만난다고 한다.

(구름)누운다리(와운교)에서 똑바로 가면, (구름)누운(와운)마을이고 죽 올라가면 넋샘봉(영원령)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가면 꽃핌재(화개재)로 이어지는 밴샅골로 이어지는데 이 길로 간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못 본 것이 돌칸(석실)과 흔들바위(요룡대)인데, 누리그물에서 찌검들을 찾아 보았다.

                                                                  자연과우리님이 찍은 찌검 

 

                                                     빨치산의 유무(신문)를 찍는 곳으로 쓰였다 한다 

                                                         아래 찌검에서 위에 좀 큰 바위가 흔들바위

 

                 

가지 않은 누운마을에는 다섯온(500)해 묶은 즈믄해솔(천년송)이 있다고 한다.  

 

                                                                  아트힐에서 에둘러 가져옴

한메의 즈문해솔은 나이가 한 500나믄살로 어림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20저자, 가슴높이의 둘레는 4.3저자이며, 둘레로 뻗은 가지의 너비는 18저자에 이른다.

한메의 구름도 누워간다고 이름 붙여진 누운마을의 15사람이 이 나무를 살피고 있어 때깔이 좋고 나무꼴 또한 매우 아름답다.


이 나무는 마을 뒷산에서 해섬과의 싸움(임진왜란) 앞부터 살아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20저자의 사이를 두고 한아시(할아버지)솔과 할매(할머니)솔이 이웃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솔을 마을사람들은「즈믄솔(천년송)」이라 불러오며 식게를 지내왔다 한다.

해마다 첫사흗날에 마을의 아늑과 걸해(풍년)를 빌벼 지내는 식게의 우두머리로 뽑힌된 사람은

섣달 그믐날부터 바깥나들이를 삼가고, 뒷산 너머의 골짜기(산지쏘)에서 몸을 �고,

옷 3벌을 마련 땅불쑥히 몸을 간수한다고 한다.


슈룹(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이 아름다우며 애틋한 내려오는 이야기를 가진 큰 늙은 나무로 드물고 나랏소슬(풍속)로 값어치가 커 날터기림몬(천연기념물)으로 찍어 지키고 있다고 한다.


미르씻은못(미르자국못:탁용소), 뱀못(뱀소), 두루미못(병소), 가리개못(병풍소), 스님식게대(제승대), 간장못(간장소) 따위가 있다는데, 물이 적고 어둠속에 보지 못한 곳이 많다. 이들을 누리집에서 찾아 보니,

                                                                             미르씻은못

 

 

                                                                                 두루미못(병소)

 

                            

                                                                           가리개못(병풍소)

                                                  

                                                                                 스님식게대(제승대)

 간장못을 지날 때에는 날이 밝아졌다(07:10)

  

 

 

 

 옛 밴샅골비낌터(대피소)는 헐리고 새로이 오름돕는곳이 생겼다.

 

밴샅골 마지막에서 꽃핌재(화개재)에 오르는 길은 이제까지의 밋밋한 길에서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드디어 꽃핌재(화개재)에 올라왔다. 경상도 연동골에서 올라온 소금과 바다낳이를 전라도 밴샅골에서 올라온 삼베 멧나물과 바꾸었다는 저자터다.

 

 

 

 

  

 

 


꽃핌재(화개재)에서 낫날봉(삼도봉)으로 가는 240저자 길이에 서다리셈은 600을 헤아린다 한다!

 

 

 

 

 

 

낫날봉은 꼭대기의 바위가 낫날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날라리봉 늴리리봉으로도 불리었고, 새 길이 서로 만난다 하여 세길봉(삼도봉)이라고 불리운다.

 

 

 

 

노루목에서 슬기봉(반야봉)까지의 즘게는 1즈믄저자(km). 노루목에서 슬기봉(반야봉1,732저자)까지는 다녀 오는데 두 새때가 걸린다 하여 그냥 지나치고 임걸재로 바로 간다. 접때 멧등탈 때도 지나쳤는데, 또 지나친다. 좀 서운하다.

 

 노루목에서 임걸재로 내려가는 길에 좀 넓은 터에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다.

 

 

 

 

 임걸재는 옛날 앗선 때 임걸이란 옳은 일하던 도둑무리 몇 온 사람이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그들이 머물렀던 자취로 화살끝 따위가 나온다고 한다.

물이 좋은 샘이 있어 메타는 사람들에게 물을 대 주는데,

날이 많이 가물어서 그런지 콸콸 나오던 물이 졸졸 아주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싸온 낮밥을 먹고 한 참 쉬었다 간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피아골 물든 잎이 그렇게 좋다는데 이제는 많이 떨어져 볼 수 없을 것 같다.

밴샅골과 피아골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지고 왔는데, 그 바람이 많이 깨졌다.

피아골은 옛날부터 이곳이 땅이 기름지지 못하여,

지저분한 누리를 버리고 들어온 사람들이 피를 갈아 “피밭(직전) 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바뀌어 피앝골-> 피아골이 되었다고 한다.

‘앝’은 밭이란 뜻을 가진 말이다. 저 아래 직전이란 마을 이름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내려오는 길에 겨우살이가 많이 있다.

겨우살이는 뽕나무참나무 동백나무에 더부살이 하는 것은 낫(약)으로 쓰나,

그밖의 밤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 따위에 더부살이 하는 것은 닻깔(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한다.

겨우살이는 나쁜 혹 없애는 보람(항암효과)이 크고, 센 피누름(고혈압), 단오줌(당뇨), 뼈마디곪음(관절염) 따위에 좋다고 한다.

  

 꽃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물든 잎조차 진잎으로 떨어지기까지 얼마를 버티는가?

요새는 파란잎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아 보이니,

해달의 움직임과 때의 흐름이 

그리고 사람의 생각 또한 철을 어길 수 없는가.

진잎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때를 마음 속에 그려본들 무엇하리!

 

 

 

 

 

 

 

 

 

 

 

 

 

 

 

 길 아래는 벼랑으로 되어 있고, 그아래에 냇물이 흐른다.

 

  

 

메 아래는 그래도 조금 물든잎이 남아 있다.

 

 

 

 

 

 

 

  

 타고 온 큰 수레가 여기에 와 있다.

 

생각한 것보다 진잎이 많이 떨어져

머나먼 길을 온 보람없이 

피아골이 자랑하는 날빛을 구경하진 못했어도

함께한 메벗들의 곱게 나이들어 가는 모습을

피아골에서 본 것도 큰 기쁨이리라.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아닌가?

다음에 아름답게 물든 잎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