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수노멧줄기(한북정맥)-샘내고개에서 울대고개까지(01/10)
샘내고개->돌메(도락산)갈림길->장엽굴고개-> 유격장-> 임꺽정봉-> 오산삼거리-> 산성-> 작고개-> 범울이메(호명산)-> 한강봉-> 챌봉-> 길음동공원묘지-> 울대고개(모두7새
때30난)
이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08:00에 버들골(양주)참에서 만나느라 서두르다 보니 찍틀과 손말틀도 빠치고 나왔다.
고맙게도 함께 메를 탔던 길손님, 밝은나라님, 스팅님, 양파링님들이 찍은 것을 쓸 수 있게 해주셔서 얼마씩 싣는다.
길봉메(도봉산)참에서 07:02 수레를 타야 맞추어 갈 수가 있다.
길봉메(도봉산)의 이름은 앗선(조선)을 여는 길을 열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서울을 벗어나는 곳을 갈 때는 갈아타는 참에서의 갈아탈 수레의 떠날 때를 틀림없이 보고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때를 맞출 수가 없다.
버들골참에서 길을 건너 큰수레를 타고 다섯째 참에서 내려 8:30쯤 샘내고개에서 멧길로 들어 간다.
한 40난쯤 가니 도락산(440.8저자)과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도락산이란 이름은 꼭대기에 있는 바위 때문인 것으로 어림되는데,
돌메라는 뜻이 돌악->돌악산->도락산으로 바뀌고,
그 거니에서 돌압산 두락산 도력산 따위의 이름으로도 불리었으며,
해동지도(1760)에서 돌압산(突壓山)으로 씌여졌던 것이 신편조전지지(1924)에서부터 도락산(道樂山)으로 되었다고 한다.
또는 고려가 세워진 뒤 솔울(송도)언저리 500말을 돌아보니,
돌메(도락산)만은 솔울(송도)을 바라보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 같아 참섬기미메(충신산)로 불렸으나,
앗선(조선)이 서울을 서울(한양)로 옮기고 나서 오직 이 메만이 서울(한양)에 등 돌리는 꼴이었다고 하여,
높채(조정)에서 산의 머리를 치게 했고,
이에 머리가 떨어진 두락산(頭落山)이 되었으며,
그 뒤 이름이 나쁘다하여 도락산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단다.
더불어 꿈새땅(단양)에 있는 길즐메(도락산 964저자)란 이름은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에서 송시열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른쪽은 돌메 가는 길. 왼쪽으로 임꺽정봉 불골메(불곡산)가 나타나 있다. 불곡산이란 이름은 옛날에 고향나무(회양목)가 많아 겨울이 되면 빨갛게 물든다 하여 붉은 골짜기 메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불골메를 됫글로 쓰다 보니 불곡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꺽어 조금 내려가니 고갯길(청엽굴고개)이 나타나고, 쌈꾼 몸닦달하는 곳이 나타나는데,
문이 걸려있고, 200저자를 왼쪽으로 가서 올라가라고 되어 있다.
어찌어찌해서 쇠가시줄을 넘기도 하고 하여, 만들어 놓은 절벽 오르기 하는 곳에 다다라 서로들 덧이름을 밝히고 올라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쌈떼(군대)에 있을 때, 우리가 여기 와서 몸을 닦달하던 곳이다.
나는 어찌해서 여기에 오지 못했었는데, 가래비라는 곳은 좀 자주 나왔었다.
그 때는 가래비라는 마을 이름이 어떻게 해서 붙었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이제 보니, 앗선때(조선시대)부터 가래나무가 흔하고 마을 어귀에 큰 가래나무로 다리를 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바위등성이에 오르니 바라보기 좋은 바위가 있고, 임꺽정봉이 있다.
아리수노가지(한북정맥)길은 불골메를 지나지 않아 그 쪽으로는 가지 않는다.
임꺽정봉을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 모르겠다.
임꺽정봉이란 말뚝을 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내려오는데는 아주 가파른 벼랑이 있다.
한창 서다리를 만드는 마무리일을 하고 있다.
위에 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놓았는데, 거기를 들추고 서다리를 밟고 내려온다.
여기 이것이 없었으면 어쨌을까 아찔한 곳이다.
바위등성이를 내려온 뒤 등성이를 조금 따르다 왼쪽으로 꺾여 내려 간다. 오른쪽으로 가면 임꺽정이 둥지를 틀었던 청석골이 나온다고 한다. 메를 내려오니 세거리가 나오는데, 오산 세거리라 한다. 여기서 조금 서서 쉬면서 볼일도 좀 본다(10:30).
길을 건넌 뒤 다시 메를 오른다.
가다 보니 돌로 쌓은 잣(성)이 허물어진 것이 조금 보인다. 그래서 여기가 무슨 메잣(산성)이 있었던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곳이 메잣이었다. 번김보내는소삼(송전탑)이 있다. 몇 제째 것인지 모르는 좀 높은 곳에 다다르니 11:45쯤 되었다.
낮밥을 먹을 마땅한 곳이 없다고 거기서 낮밥을 먹는단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꽤 불어 맨손으로 밥을 먹기가 손이 시려 손싸개를 하고 밥을 먹는다.
날이 추워 밥도 후다닥 먹어 치우고 걸음을 잦추른다.
여기에서 낮밥을 먹었으면 아주 다뜻했을 것 같다.
다음에 나오는 메가 범울이메(호명산 423저자)이라 한다. 다른 곳에도 이런 이름을 가진 메가 있는데, 하기사 옛날 범이 한 곳에서만 울었겠는가?
다시 아리수(한강)봉을 지나고,
땅그림 위에서 보면, 꾀꼬리봉(425저자)을 지나는데, 어디가 꾀꼬리봉인지 모르고 지나왔다.
조금 지나서 까마귀머리메(오두산)쪽으로 가는 길과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아리수노가지(한북정맥)를 새롭게 보는 사람들은 까마귀머리잔가지(오두지맥)(한강봉-> 꾀꼬리봉-> 장군봉-> 수리봉(562저자)-> 고령산-> 앵무봉(622저자)-> 뒷박고개-> 박달산-> 미륵당-> 월릉산-> 기간봉-> 보현봉-> 오두산)을 아리수노가지(한북정맥)라 하고 옛 길을 길봉잔가지(도봉지맥)라고 한다는 것이다.
곧 이어 챌봉에 오른다. 챌봉은 채를 치는 꼴을 닮았다 해서 채봉이었는데 챌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챌봉에 오르니 갈 쪽으로 하늘날음갖춤(항공무선표시국)이 하얗게 빛나고, 그 넘머로 임금(선조)이 준메(사패산, 정휘옹주가 시집갈 때: 메꼴을 보고 새로이 이름을 지었으면), 길봉등성이(도봉능선), 그리고 세뿔메가 보인다.
챌봉에 오르니 갈 쪽으로 하늘날음갖춤(항공무선표시국)이 하얗게 빛나고, 그 넘머로 임금(선조)이 준메(사패산, 정휘옹주가 시집갈 때: 메꼴을 보고 새로이 이름을 지었으면), 길봉등성이(도봉능선), 그리고 세뿔메가 보인다 .
챌봉에서 둘레를 둘러보고 쉬다 왼쪽 길로 내려간다. 얼마를 가서 하늘날음갖춤앞에서 잘 갈은 길로 내려와 조금 따라가다 왼쪽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 길을 따라가며 왼쪽으로 보이는 멧등성이들이 아름답다.
숲길을 한참 가니 오른쪽으로 잘 가꾸어 놓은 무덤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저 무덤들은 얼마 동안 보살펴 주는 것인가? 앞으로 줄기잔칸(세포)에서 다시 사람을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묻힌 뼈에서 줄기잔칸을 뽑아내 그 사람을 다시 살려내? 거기서 내려가니 오늘의 날머리 울대고개가 나온다.
순대국으로 뒷풀이를 한다고 하나, 나는 순대국을 먹지 않으므로 길을 건너, 큰수레를 타고 집으로 일찌감치 길을 잡았다. 큰줄기에서는 어느 높이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서울 가까운 가지에서는 바닥 마을까지 내려왔다 올라갔다 한다. 불골메는 제대로 가보지 못하였으므로 나중에 다시 살펴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