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물음절?(도선사)-무당골-입술바위-족두리바위-편바위(병풍바위:용암봉)-낟가리봉
-담비길-구슬발(염초)3봉-효자비
멀쩡한 우리말 놔두고 야릇한 말 쓰기에는 콧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메모임을 따라 가보지 않은 세뿔메길을 가보기로 하였다.
무너미참(소귀내가 오란비철이되면 흔히 물이 넘쳐 무너미마을이라 함:수유역)에서 9때 30난에 만났다.
작은수레를 타고(삯 한 6,000원) 네 사람씩 길묻음절로가서
10;03쯤 절 한기둥오래(일주문; 한쪽에 한 기둥이라?)를 지나 왼쪽 메타는 길로 접어든다. 43사람이나 같이 간단다.
그 길로 한참 가니(10:16) 큰 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와 길은 여러 제 다녔고 보았던 바위다.
이 바위가 김상궁바위인데 그 김상궁이 김개똥이(개시)라는 상궁인 줄은
오늘 우리를 이끌어 주는 김독님(김[기]을 받아 담는 독:래옹)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 알았다.
정광화(淨光花)라는 이름은 빛바다임금(광해군)의 길을 깨끗이하는 꽃(보살)이라는 뜻인가?
날아운(미천한) 몸으로 태어나 일찍이 새높채(동궁)의 일꾼으로 들어 왔으나, 뛰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젊은 빛바다와 맺어지고, 뛰어난 머리로 그 아비임금(선조)의 나인으로 뽑혀갔다.
나중에는 다시 빛바다임금의 가장 가까운 나인(지밀나인)이 되어,
빛바다임금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치우려 모든 것을 바쳤고,
빛바다임금이 쫓겨나자 목숨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따로 머리 깎고 절에 가서 마음을 닦지는 못했을 것인데, 사리탑이라고 바위에 써있으니 어떻게 된 노릇인가?
사리는 산스크리트말 Sarira로 처음에는 거룩한이(성자)의 주검을 모두 사리라 했으나,
뒤에는 거의 주검을 불태운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꼴의 것만을 사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니 말이다.
어느 분이 여느 사람도 사리가 나온다고 하네요.
거기서 미르바위오래(용암문)로 가는 길로 가지 않고, 오른쪽 무당골길로 얼마를 가니, 좀 넓은 곳이 나타난다(10:31).
거기에서 둥그렇게 둘러서서 김독님이 온 사람들을 한 사람씩 새든다(소개).
그러고 나서, 뒤늦게 몸을 좀 풀고 다시 올라가니,
입술바위에 다다른다(10:58).
높이가 사람 두 길이 훨씬 넘어 그 입술에 맞추려면 밑에서 누군가가 받쳐주어야 한다.
또 길을 가다 보니, 왼쪽에 옹달샘(무슨 메모임에서 ALPS라고 써 붙여놓았는데 웬 알프스?)이 있다.
한 모금씩 목을 축이고, 더 올라가니 등성이에 오른다(11:29).
여기가 골빛대닷거리(골빛대허리길 골빛대 흰구름멧집 족두리봉 도선사로 가는 길이 모여: 또는 곰네거리란다. 무당골 오른쪽 등성이가 곰바위등성이 왼쪽이 무당등성이).
왼쪽 등성이쪽으로 올라가면 골빛대(만경대)가 나오는데, 어려운 길이라 가지 말라고 써 놓았다.
오른쪽에 있는 바위가 족두리바위다. 왼쪽이 코끼리바위라고 한다.(찌검은 야후의 론리핸드의 블러그에서 펌)
그 쪽으로 올라가 찌검을 찍고(11:46까지), 다시 닷거리로 나와 등성이길을 비껴 왼쪽 옆길(허리길:연인길?)로 간다.
여기서는 둘레 날빛을 볼 수가 있다.
왼쪽에 봉우리가 갈 미르바위봉(용암봉)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다 보니 투구까지 갖춘 사람 몇이 길 왼쪽에 앉아서 놀이터일군(공단사람)이 온다고 수군거리는데,
그 사람들이 미르바위벼랑을 타고 올라 왔거나 골빛대등성이를 넘어온 사람들인가 보다.
처음 간 길이라 이제 와 되돌아보아도 어떤 길로 갔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
미르바위봉(용암봉)에 갔었는지? 거기 가는 길이 어땠는지?
아래 찌검들이 꼭대기에 가면서 그리고 꼭대기에서 찍은 것 같다(12:19~25).
왔던 길을 되돌아 아까 사람들이 있던 곳을 다시 지나 얼마쯤 가다 내려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르바위오래(용암문)를 거쳐 흰구름봉오래(백운봉암문;위문)로 가는 큰 허리 돌음길과 만난다.
얼마 가다 왼쪽으로 들어가 널따란 곳이 있어 자리를 잡고 낮밥을 든다.
배를 든든히 한 다음 다시 길로 나와 가다, 낟가리봉(노적봉) 움펑이(안부)에서 왼쪽의 나무울타리를 넘어 낟가리봉으로 오른다.
낟가리봉은 멧부리가 두 봉우리로 되어 있다.
그 옆길을 많이 다녔어도 올라가 보지 않아 부리가 둘로 되어 있는지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새봉(동봉 또는 1봉)으로 올라가서 저봉(서봉 또는 2봉)으로 건너갔는데,
두 부리 사이가 30저자(미터)라 한다. 처음 올라 본 낟가리봉! 둘레에 펼쳐지는 날빛이 너무나 아름답다(13:39~50)
저봉으로 올라가려면, 잘 하는 사람은 그냥 갈 수도 있으나, 많은 사람이 빨리 가려면, 줄을 잡고 올라가는 것이 쉽다.
줄을 걸어 그것을 잡고 올라가는데 꽤 힘이 든다. 어쩌면 줄을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팔 힘이 모자라는가 보다.
한 사람이 줄을 잡고 오르고 있다(신로사님이 찍은 찌검)
아래는 퍼온 찌검으로 왼쪽이 첫새벽(원효)봉 그 오른쪽이 구슬발봉(염초봉) 맨 오른쪽이 흰구름대 저녁비탈이다.
그리고 거기서 바위를 타고 바로 내려간다. 이 길이 담비길인가 보다.
물매가 엄청 가파르지는 않았으나, 낟가리봉에서 바위를 타고 내려간다는 것이 좀 떨리기는 떨린다.
그러나 모두 잘들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다 바윗길은 그치고 사람들이 안 다니는 좁고 가파른 길로 내려가는데 요새 가물어서 먼지가 난다.
가다가 몇 군데 조금 가파른 바윗길이 있다.
그렇게 내려가면 흰구름오래(백운동암문;위문)에서 내려오는 길하고 만나게 되는데, 만났는지 생각이 안 난다.
만나는 길에서 다시 올라가야 낫물절(약수암: 지난해 불탔다 한다)이 나오고 더 올라가야 낫물절빈터(약수암공터)가 나온다.
앞에 다라가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마흔이 넘는 사람들이 가는데, 가운데쯤에서 가니 알 수가 없다.
어떤 분이 고맙게도 그려 올려논 위 그림을 보면, 그 언저리의 꼴을 어림할 수가 있다.
14:30(106)약수암위공터쯤되나 흰구름봉을 바라보면서 누군가 신동엽길이 있다고 한다.
신동엽길은 경원대 메동아리(산악부)에서 1993-1994해에 걸쳐 뚫은 세뿔메 흰구름대(836.5저자) 마저바람(남서벽)에 있는 길로, 해섬에 맞섰던(항일) 신동엽(1937-1967) 을프미(시인)를 기리려, 길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한다.
그의 내로라하는 을펌으로는 '껍데기는 가라' '종로5가' 따위가 있다. 3
사람이 오를 때 한 6때새쯤 걸린다지만 때에 따라서는 10때새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여기 그 길을 알려주는 고마운 분의 찌검을 빌어 올린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구슬발닮은봉(염초봉[薕肖] 또는 염초(焰硝)봉; 그 아래 언저리서 염초(焰硝:화약)를 구워서 그렇게 지었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도 같다)을 바라보고 간다. 움펑이쯤 되는 것 같다.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구슬발3봉에 올랐다(15:20).
낟가리봉의 두 봉우리가 잘 보인다. 오른쪽의 저봉의 바윗길을 타고 내려왔다.
구슬발봉은 세 바위로 되어 있는데, 저마다 봉이라 불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흰구름봉쪽으로 가면서 1봉(책바위) 2봉 3봉으로 붙인다.
그 끝이 되는 가장 높은 곳이 이곳이다.
2봉은 어느 쪽에서도 그냥 걸어서 갈 수는 없단다.
이런 것을 미리 몰라 1봉 2봉을 찍지 못했다(15:26).
이런 봉우리는 아슬아슬하다고 해서 가 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던 봉우리다.
다시 구슬발3봉들머리로 내려와서(15:34) 어떻게 갔는지 생각이 안 난다.
이제 땅그림을 보면, 구슬발3봉들머리에서 흰구름봉쪽으로 올라가다 무너진 잣바람(성벽)을 넘어 왼쪽으로 가야하는데.
냇가에 다다랐다(16:18).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다 내려왔는지 헤아려 본다.
그리고 날머리서 가볍게 뒤풀이할 사람은 하기로 하고 내려간다.
그런데 웬 걸음들이 그렇게 빠른지 어쩌다 네 사람만이 뒤에 떨어졌다.
이제는 어려운 길이 없으니 모두 날아갔나 ?
밤골공원지킴터쪽으로 가다 두 갈래길에서 왼쪽으로 좀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
멧기슭을 벗어난 것이 17:05이다. 바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을 만났다.
여러 사람이 남아 돼지콩묵찌개에 돼지고기구이를 곁들여 뒤풀이를 가볍게 했다.
의정부로 가는 큰수레(34)를 타고, 가능에서 내려 긴수레를 갈아타고 집으로... 훌륭한 멧길을 찾아내 세뿔메에 새로운 눈을 뜨게 이끌어 주신 김독님과 함께 한 모든 님들 고맙고 반가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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