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이란 이름에 마주해서는 많은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왜 됫나라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내려오며 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늘날까지 오르내려야 하는가?
서라벌 때에는 돌가리개메(석병산)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앗선(조선)때에는 대둔산, 주방산(김주원이 머물렀다는 곳으로)으로 불렸다.
고장발자취갈이인 김규봉님은 그가 지은책 <주왕산>에서 주왕산의 주왕 이야기는 서라벌 김헌창의 일떠섬을 뒷날에 알리려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920해 김범문(김헌창의 아들)의 배우미인 낭공스님이 쓴 <주왕사적>의 노총적음마참(비결편)에 따르면 주왕산에 마주해 내려오는 참이야기는 서라벌 임금자라싸움에서 밀려난 김주원 김헌창 김범문의 3뉘에 걸친 슬픈 이야기라는 것이다.
김주원은 선덕왕이 죽자 임금으로 올려졌으나 알천 가람가가 냇물이 불어서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상대등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올라 임금이 되지 못하고 뒷탈을 두려워해 하슬라도 달아났고, 2해뒤 그 곳에서 하서주도독으로 된 뒤에 명주군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두째 아들인 김헌창은 아버지가 임금이 되지 못한 것이 맺혀 임금자리를 되찾고자 일떠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들의 이야기를 감추어 알리려고 때와 곳을 바꾸어 당나라와 주왕을 끌어들였으며 나오는 사람들도 거짓이름을 쓰고 있다고 한다.
당나라와 주도의 이야기는 이제 빼고 우리 발자취에 맞는 메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좋을 것같다!!!
수레에 짐을 두고 연못에 들렀다.
찌검에서 보았던 끔속같은 날빛은 아니다. 아름다운 꿈이 깨지는 ....날도 아직 다 밝지 않아서...
다시 수레에 돌아와 다시 절골까지 수레를 타고 가서 짐을 챙겨 메를 오른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판쵸비옷을 늘 넣고 다니는데 오기에 앞서 살펴보니 그것이 없어졌다 부랴부랴 비옷 하나를 챙겨가지고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등자루에 있었다...
가메봉이름은 봉우리에 있는 바위가 가마처럼 생겨서 가마봉이 가메봉이 되었다 한다.
처음부터 내린 비가 줄곧 내리고 있다.
뒷쪽에 붙었더니 가메봉으로 오르지 말고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는 내리 오고 옷은 젖어들어 200저자를 앞두고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비가 내리니 비옷을 나무위에 걸치고
그 밑에서 낮밥을 자시는가?
큰 바람을 가지고 왔는데 여기까지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가 줄곧 내리니 찍틀에 비가 들어갈까 두려워 찍틀을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아예 깊숙히 넣어 버렸다.
이 다음부터가 참 볼만한 곳인데....
그래서 함께 한 사람들이 찍은 것으로 골라 올려 본다.
두루미둥지대
날씨 탓에 마음도 바빠 건성건성 둘러보고 나오기 바빴다.
내려오는 길에도 헤아릴 손 없는 사람들이 올라 가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넉넉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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