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고 나서

세뿔메(삼각산) 숨은등(숨은벽)부리 타고 호젓하게 다니기(11/23)

하늘꿈꾸미 2008. 11. 24. 16:25

된아들기림돌(효자비)-> 사기막등성이-> 머리뼈바위-> 바라봄바위-> 목숨사랑(인수)골짜기-> 숨은등부리-> 가운봉샛오래(흰구름봉샛오래)-> 낫물절(얏수암)-> 낫가리봉(노적봉)잘룩허리-> 낫가리절(노적사)-> 적석고개-> 메잣나들머리

 

 

겨울철로 접어 들면서,

날씨도 추워지고 낮의 길이도 짧아짐에 따라,

이제 메에 오르는 일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고자 한다.

마침 세뿔메에 가보지 않은 곳인 숨은등부리와 낫가리절을 간다는 김독님의 글이 올라와 거기를 따라 가기로 했다.

 

부처빛마을(불광동) 울밖큰수렛목(시외버스터미널)에서 9:30에 만나기로 하였는데,

함께가는 사람들이 마흔이 넘고 다른 사람들이 붐비므로

먼저 온 사람들은 된아들기림돌에 먼저 가기로 하여 앞서 떠나 기다린다. 

길 맞은켠의 모습.

 

오늘 메오름의 들머리 

 

 이쪽에서 몇 제 올라갔는데,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오늘에서야 이 기림돌을 보게 되었다.

 

 

메타러 떠난 이 때가 10:47이다.

 

 여기서 냇둑을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10:50에 이런 사람 사는 집인지 누가 말하듯이 막걸리 파는 집인지를 만난다.

막걸리를 파는 집은 아닌 것 같고 살림집인 것 같다.

뭘 팔려면 판다고 써붙였을 테니.

 

 

 10:57쯤 이런 무덤앞에 다다라 서로 덧이름을 말하고

가볍게 몸을 푼 뒤 떠난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왼쪽으로 간다. 서너제인 것 같다.

올라 올 때 몇 제 기슭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건너 온 것 같다.

  

 

이제 사기막등성이에 오른 것 같다. 사기막이 옛날에 흰그릇 굽던 움집이 있었던 것인지?

 

 

이렇게 돌로 잘 다듬어 놓은 길도 있다.

 

조금 바위를 올라 가니 이런 곳을 만난다.

접때는 옆으로 돌아갔는데 오늘은 올라 와 봤다.

머리뼈바위인가 본데 머리뼈바위는 볼 생각을 못했고,

저기를 올라갈까 돌아갈까를 생각했다.

여기까지 오르는데 마지막에 한 길쯤 올라오는 곳이 발 놓기가 거북해서 좀 그랬다.

 저 밧줄만 잡고 올라가면 되기 때문에 어려운 곳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밀려있고 바위타는 신도 신지 않아

돌아가기로 하고 왼쪽으로 내려 가는데,

그곳도 사람들이 잘 내려가지 못한다.

 

찌검을 하나 찍고,

 

내려가서 돌아가는 길은 이렇게 생겼다.

 

돌아 올라가서 바라보는 바위(전망대)에서 아래 머리뼈바위쪽을 내려다 본다.

 

다시 숨은등쪽을 바라본다.

 왼올로 두쪽이 벼랑이다(12:25)

 

저아래 사람들이 보이는 곳이 바라보는 바위이다(12:33)

 

 

 저 아래 사람들이 있는곳까지는 간다.

거기서 왼쪽으로 내려가 골짜기를 따라 올라간다(12:43).

 

 왼쪽 골짜기의 날빛이다(12:50).

 

왼쪽으로 틀어 목숨사랑골짜기(인수협곡)로 들어가 오른다.

 

 

 

 

 목숨사랑(인수)봉에 사람들이 붙어 줄을 타고 오르고 있다.

인수(仁壽)봉인데, 어질다 사랑한다 불쌍히여긴다는 뜻을 가진것이 인자인데,

봉우리가 머흘어서 잘 못 오르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니, 함부로 오르지 말고 목숨을 사랑하라 이런 뜻으로 새겨서,

목숨사랑봉이라  부르면 어떨까 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좀 타고 오르면 숨은등부리에 오르게 된다(13:14)

 

숨은등부리에서 바라본 흰구름봉쪽이다(13:22)

 

목숨사랑봉.

 

목숨사랑봉 밑의 등성이.

 

왼쪽으로 보이는 등성이. 첫새벽봉등성이인가?

 

아래로 보이는 곳이 숨은등성이일 텐데 등성이가 다 보이지 않는다.

그 등성이를 보고 찍으려면 앞에 있는 바위로 가서 찍어야 할까?

 

 

 

왼쪽으로 조금 내려와 낮밥을 먹을 곳에 이르렀다.

목숨사랑봉을 바라보며 낮밥을 먹는다(13:28).

 

 

 

낮밥을 먹고 흰구름봉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 내려간다(14:23).

 

 

'백운동암문' '백운문'으로 쓰이던 이름이

1930열해때 가운 뒷구석에 이르러 '위문'이란 이름으로 쓰이기 벌이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쓰인 일이 없는 말이고,

해섬(일본)에서는 잘 쓰이고 있는 두루이름씨(보통명사)라는 것이다.

 

겨레의 얼을 빼앗고자 집안이름과 이름을 해섬이름으로 바꾸던 때에 잣오래(성문)이름도 해섬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아직도 버젓이 그 이름을 내걸고,

많은 서울 사람들이 메를 오르며 드나드는 그곳에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2004.11.23 오나의유무 "매국의 문 '위문'을 걷어치워라!" 김남용).  

 

이런 것을 파헤쳐 알려준 글쓰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또 그 이름이 "오마이뉴스"라고 우리말이 아니고,

잉글말로 된 유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라는 이름을 우리나라 사람이 옛부터 쓰고 있는 이름인가?

나는 이 유무를 보지 않는다.

그 이름부터 욕지기질이 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다음에서 찾게 된 것이다.

 흰구름봉(백운봉, 백운대)이라는 이름은 이성계가 한마디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 앞에는 가운봉(중봉)이라 했다한다.

세뿔메의 세 봉우리 가운데에 가운데에 있는 봉우리란 뜻이겠다.

그리하여 '가운봉샛오래(중봉암문)'나 '가운봉오래(중봉문)'라 하면 옛이름이 될 것이다.

그 오래를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를 지나지 않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소귀마을(우이동)쪽으로 갈 수 있다.

 

이렇게 내려가서 낫물절(약수암)에 못미쳐,

왼쪽으로 허리를 타고 가다 왼쪽으로 올라간다.

 

올라오고 있다.

 

낫가리봉 잘룩허리에 다다랐다(15:04). 

 

 골빛봉(만경봉)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낫가리봉을 오른쪽에 끼고 내려가다 등성이를 타고 내려간다.

낫가리봉 바위를 오르는 사람들(15:18).

 

골빛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줄기다.

 

 

 

이런 진잎길도 간다.

 

 

 

 여기까지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틀어 간다(16:01).

 

 

 

낫가리절(노적사)을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지나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더 멀리 떨어져 찍어야했는데, 무슨 고인돌 같이 보인다.

앞에 네모진 돌을 쌓은 아래에 조그만 못이 있는데, 물은 말라 있었다(16:20).  

 

조금 올라가 등성이에 이르러 좀 쉬었는데,

거기가 적석고개라 하고,

거기서 가는 쪽에서 왼쪽에는 북장대지가 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누릉지바위가 나오고,  낫가리봉으로 오르는 바위길이 있다 한다.

 

내려오는 길에 건너다 보이는 꽤 큰 절이 보이는데, 좋은�구름절(상운사)인가?

 

 대동사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메잣(산성)나들머리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 간다.

노오래(북문)을 거쳐 첫새벽봉(원효봉)에 올랐다 내려올 얼개였는데,

처음 메탄 사람들이 있어 늦어지는 바람에 날은 저물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 줄여서 하게 되었다.

메잣나들머리에 이른 것이 17:40쯤 되었다.

 

메탄 뒤에 뒷풀이라고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내키지 않으나 따라가는 때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즐겁게 하기도 한다.

몸에 좋자고 메를 타고 나서, 술마시고 그것도 너무 마시게 되면, 오히려 몸을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요새는 맛갓을 먹기도 많은 마음을 써야 한다.

메리(미국)에서 들어오는 쇠고기가 바깥에서 사오는 쇠고기의 가웃을 넘었다는데,

그렇게 메리쇠고기라고 내세우고 파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니 그렇고.

 

돼지고기도 메리에서 들어오는 것이 많단다.

돼지키우는 것이 메리에서 키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키운다고 해도 맛갓찌꺼기를 먹인다면,

메리에서 들어온 쇠고기지꺼기도 먹이게 될 것이고,

이래저래 되나라 김치에 해서 될 수 있으면 사먹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곳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끈끈하게 탄 뒤에 하는 뒷풀이라면,

서로 굳게 맺어져 좋게 이어질 수 있으니라.

그러나 그렇지 않은 마대(경우)에는

잘 못하면 술 마신 탓에 오히려 서로 마음을 다칠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메타면서 보았던 메의 아름다운 날빛을 간직한 채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