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고 나서

세뿔메(삼각산)인가 미리내노메(북한산)인가?(12/13)

하늘꿈꾸미 2008. 12. 14. 11:42

독바위참(역)-> 족두리봉-> 옷곳봉노봉(향로봉)옆길-> 새품은절(포금정사)터-> 새김돌봉(비봉)옆-> 감투바위(사모바위)-> 옷곳봉노봉옆-> 민대머리바위-> 옷곳숲못(향림담)-> 부처빛절(불광사) 

 

오늘은 다음에서 맨 처음으로 들은 메모임바깥채(카페)에서 해를 보내는 메탐을 한다 해서 함께하게 됐다.

독바위참에서 10:30에 만나 부처빛절쪽으로 가서 좀 너른 곳에서 몸을 풀고 서로 가볍게 스스로의 덧이름을 알린 다음 메에 오른다(11:09).

 

 

조금 올라가니 지난 제(11/29)에 독바위참에서 오를 때 거쳤던 정진놀이터지킴터를 만난다.

여기서 부터 족두리봉까지 오르는 길은 똑같이 오른다.

족두리봉 마녁의 바위가 남다르다(11:54).

 족두리봉에서 다시 내려와 옷곳봉노(향로)봉으로 가는 길은, 지난 제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었다.

그러니 아랫길보다는 좀 어려운 것 같으나 크게 바드럽지(위태하지)는 않다.

접때는 옷곳봉노봉앞에서 왼쪽으로 꺽어 돌어갔는데 오늘은 바로 올라간다.

올라가다가 족두리봉을 바라보고 찍는다(12:26).

 

 좀 당겨서 찍는다.

 옷곳봉노봉을 왼쪽으로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다 좀 밑으로 내러가 좀 더 가니 잘 닦여진 너른 땅이 아래 위로 두 곳 있다.

몇 해 앞에도 높뱀터(고등학교) 벗들과 여기서 낮밥을 먹었던 곳이다.

그 때는 어딘지도 모르고 밥을 먹었는데, 이곳이 새품은절(포금정사)터란다(12:47).  

 

 윗마당에서 낮밥을 먹었는데,

이곳에 스님이 사람들에게 부처의 가름침을 퍼뜨리기를 그만 두고 새와 함께 살아서,

새품은절(포금정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다음 어디에서 보았다.

그 글에서는 이곳을 옛 옷곳숲절(향림사)터라고 저즈리나(짐작하나),

옷곳숲못(향림담)이 옷곳숲절터 밑에 있는 못이라 하니,

그 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자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고려 왕건 첫임금의 주검과 끈매가 있다.

왕건 첫임금의 무덤은 솔울(송도:왕건이 서울을 삼으면서 연서울[개경]이 되었고, 잣을 쌓아서 연잣(개성)이 되었나?)

골목숨메(만수산)에 있는데(현릉),

3351(1018)해 거란이 쳐들어옴에 널(관)을 애엎은메(부아산:세뿔메의 옛이름. 아기를 업은 것 같다하여) 옷곳숲메(향림사)로 옮겼다가,

다음해 11달에 다시 가져다 묻었다는 것이다.

그 뒤에도 여러 제 옮겼다가 돌아간다.  

 

더 찍으려고 하니 번김밥이 떨어졌다 한다.

밥을 주어도 안되길래 밥통을 다시 사서 넣어 왔는데 밥이 떨어졌다니!

밥을 채우지 않고 보냈나? 밥이 조금씩 닳아 없어졌나?

 

사잇길로 가다 보니 기림돌봉(비봉)을 지나서 등성이로 오른다.

기림돌 뒤에 잉어바위와 바닷임금(용왕)님 걸대(의자)라는 바위를 본다.

감투바위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옷곳봉노봉 앞까지 와서 오른쪽으로 꺾어 간다.

 

좀 가다 잘룩허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접때 올라왔던 골짜기 길인데,

그대로 곧장 올라간다.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갔다 또 오르고 내려가니 시원하게 벗겨져 널직한 민대머리바위가 나타난다.

어떤이는 이를 전두환바위라고 부른나

그런 이름을 붙여 줄 수 없다.

 

옷곳숲못(향림담)을 지난다고 했는데, 그런 곳을 지났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다시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옷곳숲절터와 함께!

 

골짜기길로 한 참 내려오니

부처바위절이 있는 곳이 되고 하늘채를 짓느나 시끄럽다.

오른쪽으로는 길이 막혀 왼쪽으로 절 앞으로 해서 다시 조그만 고개를 넘어 독바위참족으로 나왔다.

 

그냥 올려다 가볍게 오리고깃집에 들르자하여 들어갔다.

이야기 가운데 앞에 앉은 은아님이 북한산이 참 좋은메라고 서울버렁(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찰김받은 사람들이라고 하길래

내가 아는대로 그것 보다는 세뿔메(삼각산)가 먼저 이름이고 앞으로는 메숲말(산림청)에서도 그렇게 쓴다고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고 함께 쓰였거나 오히려 먼저 섰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러냐 처음듣는 이야기라고 알아보자 했는데,

 

생각컨데 아기를 업은 것 같다하여 애엎은메(부아악 부아산)

세 봉우리가 높이 솟아있다 하여 세뿔메(삼각산)는

메의 꼴을 보아 이름을 지은 것이고,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노녘(북녘)에 있다 했던 아리수(한강)의 노녘에 있다 했던

또는 한이라는 것이 민우리말의 한이 아니고 미리내(은하수)를 뜻하는 글씨라면

아리수를 미리내에 견주어 그 노녘에 있는 메라 하여 미리네노메?

그 자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가지고 이름을 지은 것인데,

 

둘을 함께 쓸 수도 잇겠지만,

그 자리를 두고 지은 이름보다는

그 꼴을 가지고 지은 이름이 앞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