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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숫소싸움(투우)을 보다

하늘꿈꾸미 2013. 6. 18. 12:05

스페인을 구경하러 가서 미리 생각치 못했던 숫소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다.

숫소싸움이 해날(일요일) 열리게 되어 때를 맞추기 어려운데,

마침 잔치(축제)동안이라 여느 날에도 열린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길잡이를 맡은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으로 스페인 사내한테 시집가서 사는 사람이었는데,

숫소싸움을 이야기해주는데 아주 눈에 보는 듯이 그럴듯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한축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것이었다

  

세비야에 있는 숫소싸움터.

 

 

론다 숫소싸움터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숫소싸움터(투우경기장)으로 론다에 있다.

지금은 숫소싸움보여줌집(투우박물관)으로 쓰인다고 한다(6/2).

 

 

미리 맞추고 돈을 내고, 마드리드에 다다른 날(6/7) 라스 벤타스(Las Ventas) 숫소싸움터에 들어갔다. 

 

 

 아직 때가 안돼 빈 자리가 많다  

볼 얼거리가 있었으면 미리 여러가지를 마련해 갔을텐데,

갑자기 가게 되어 여러가지를 꼼꼼히 알아보지 못해 보고나서 집에 와서야 여기저기 찾아 알아 본다.

 

마드리드 벤타스 숫소싸움터는 1931해에 지어졌고 22,000사람을 들일 손 있다고 하기도 하고 어디서는 25,000사람이 볼 손 있다고도 되어 있다.

자리는 햇볕이 드느냐에 따라 햇빛자리(sol) 햇빛과 그늘자리(sol y sombra) 그늘자리(sombra)로 나뉘고 값이 달라진다. 싸움은 저녁 7때에 열려 6싸움을 하면 거의 저녁 9때 가웃 되지 않아서 끝난다 한다.

햇빛이 들다 그늘이 지는 자리로 1켜 가운데쯤 앉았는데 사주는 삯이 덧붙어선지 120유로씩 냈다.

 

숫소싸움(Bullfighting)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잘 알 손 없지만, 사람의 발자취를 적어나가기 앞서 소를 받들(숭배하)거나 소를 받침(희생)에 그 뿌리를 둔다.

처음으로 적힌 숫소싸움은 길가메쉬을펌(서사시)이다.

거기서는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하늘나라의 황소를 싸워서 죽이는데,

죽이기 어려운 그 소와 몇 때새 동안이나 싸웠는데 길가메쉬는 소 앞에서 춤을 추면서 그의 웃옷과 빛나는 칼로 꾀어내고 엔키두가 그의 칼을 소의 목에 깊숙이 찔러 죽인다.

로마가 다스렸던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옛 페르시아의 빛과 참의 깨비)를 믿으며 받쳐진 소를 죽이는 것이 종요로운 일치름이다.

 

소와 맞서고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림은 클루니아의 켈티베리안 무덤돌에 있고,

굼그림 “El toro de hachos”, 이들 모두 스페인에 있다.

숫소싸움은 때때로 많은 사람과 짐승의 싸움이 열렸던 로마와 이어진다.

클라우디우스 임금이 칼싸움(검투)을 못하게 하고 그 갈음으로 숫소싸움을 이스파니아에 들여왔다는 졸가리도 있다.

숫소싸움은 스페인으로부터 그의 가운 마 아메리카 다스림땅 그리고 19온해(세기)에는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그 곳들에서는 그 곳들 나름대로의 꼴로 바뀌어 갔다.

 

믿음일치름(종교의식)이나 임금집 한살(왕가의 결혼) 때 넓은 뜰에서 벌어졌으며,

17온해(세기)끝까지는 높채놀이(궁중오락)로 처음에는 말탄 숫소싸움이었고

어비맏(귀족)이나 말탄싸움꾼(기사)들이 싸움꾼으로 말을 탄 채로 숫소와 싸움을 벌였다.

말탄 소싸움은 무섭게 달려드는 숫소를 뛰어난 말타는 솜씨와 짧은 찌르개나 칼로 찌르는 것이었으나

숫소를 막지 못해 함께 쓰러지는 일이 많았다 한다.

 

18온해처음 안달루시아의 멧골 론다에서 말탄 숫소싸움이 벌어졌는데

숫소싸움꾼이 말과 함께 쓰러져 길마(안장) 밑에 깔렸다.

몸을 움직일 손 없는 숫소싸움꾼을 성난 소가 다시 들이 받으려 할 때,

마을의 지위(목수)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싸움판(아레나)으로 뛰어들어 솜브레로라는 챙 넓은 갓으로 소의 눈을 가렸고 그 틈에 숫소싸움꾼을 살렸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말에서 내려 싸우는 숫소싸움이 비롯되었다고 한다(1726해).

 

이러한 바뀜은 여느 사람도 즐길 손 있는 겨루기로 자리잡게 되고 숫소싸움터를 짓게되었다.

처음에는 네모진 싸움터였으나 둥근 것으로 바뀌게 된다.

훌륭한 소싸움꾼으로 적힌 로메로는 한 살매 동안 5,585마리의 소를 죽이고 스스로는 몸에 다친 곳이 없이 8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소를 가까이 다가오도록 하고 성난 소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때 쓰는 물레타와 카포테가 만들어졌고,

소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숫소싸움꾼(matador)를 꼭대기로 하여 말 위에서 찌르개로 찔러 소의 힘을 빼는 삐까도르(picador)가 들어왔다.

18온해 뒷가운데에는 론다쪽과 세비야쪽이 큰 줄기가 되어 서로 앞 다투며 커나갔다.

처음에는 마저(남서)유럽에 고장마다 다른 적어도 5가지의 소싸움이 있었으니 Andalusia, Aragon-Navarre, Alentejo, Camarque, Aquitaine가 그것이다.

 

스페인 소싸움은 스페인말로 corrida de totos(달리는 황소들) 또는 fiesta(festival)이라 불린다.

내려오는 소싸움은 3사람의 숫소싸움꾼이 저마다 2마리의 소와 싸우고, 이 소들은 4~6해 사이의 나이에 460kg보다 가벼워서는 안된다.

저마다의 숫소싸움꾼(matador)은 6 사람의 도우미를 갖는데, 2 사람의 찌르개찌름꾼(picador), 3 사람의 작살찌름꾼(banderillero) 이들은 모두 숫소싸움꾼들(toreros)로 부른다. 그리고 1 사람의 칼심부름꾼(mozo de espadas).

 

matador는 잉글말에서만 쓰이고 스페인말에서는 torero로 쓰인다.

즈음(구별)하여 쓸 때에만 온 이름인 ‘matador de toros’가 쓰인다. 

 

요새 숫소싸움은 세 고비로 나뉘는데 고비마다 새납(나팔)을 불어 알린다.


첫고비는 먼저 가락에 맞추어 구경꾼들에게 꾸벅하려고 줄지어 싸움터에 들어온다(paseillo).

숫소싸움꾼들의 옷은 17온해 안달루시아옷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마타도르(matador)들은 그들의 놀쇠(황금)빛옷으로 흰쇠(은)빛 옷을 입은 반델리예로(banderilleros(toreros de plata))와 쉽게 즈음(구별)된다.

오늘 싸움에 끼어드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꾸벅하고 들어간다.

 

 

 


다음으로 소가 들어온다.

소는 하루쯤 어둠속에 가두어 놓았다가 밝은 곳으로 내보는 것이다.

마타도르와 반델리예로들이 자주붉은빛과 노랑의 까포르테로 소의 사나움을 꼬나보고 몇 축 들이받게 해서 소의 제깔을 알아보는 첫 맞닥뜨림이다.

팔팔한 숫소를 이리저리 달리게 해서 힘도 빼고,

어떤 숫소는 너무 성이 나서 달리다 제풀에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 놈은 세게 달리다 담에 부딪쳐 나무로 만든 담이 한 쪽 부서지기도 한다.

 

  

처음 들어 온 숫소는 힘이 좋기 때문에 성을 돋구다 담 몇곳에 만들어 놓은 숨을 곳에 가서 숨는다.

숫소가 숨어있지 말고 어서 나오라고 하는듯....

 

 


다음으로 찌르개를 든 삐까도르(picador)가 말을 타고 들어온다.

말은 소뿔을 막으려고 "peto"라 불리는 감싸개를 둘렀다.

1930해 앞에는 말이 아무것도 두르지 않아 숫소가 이 고비에서 말의 배를 가르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싸움에서 죽는 소보다 말이 더 많이 죽어나갔다.


찌르개찌름꾼은 숫소의 morrillo(목힘살이 모인 꼭대기)뒤를 찔러 소의 목힘살을 여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한다. 소가 말을 받는 버릇을 보면 소가 어느 쪽을 좋아하는지 마타도르가 알아챌 빌미를 준다.

찌르개찌름꾼이 잘 했다면, 소의 머리와 뿔이 낮아질 것이다.

찌르개찌르미와의 만남은 숫소의 움직임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어수선했던 소는 좀 더 고초고(집중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보다 한 과녁에 머무른단다.

말의 눈은 가리는데 말은 피를 보면 앞발을 드는 제깔이 있어 말탄이가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함께 보던이 가운데 몇은 피냄새 때문에 보다가 일찍 나왔다고 한다.

삐까도르는 둘이 두 쪽에 나오는데 크게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으면,

마타도르와 반델리예르가 숫소를 꾀어 그 쪽으로 가도록 한다.

그러면 숫소가 말을 들이 받는다.

그 때 긴 찌르개로 찌른다.

 

 


두째 고비는 세 사람의 반델리예가 한 사람이 둘낱의 작살을 숫소의 어깨에 던져 찌르는  것이다.

이는 소를 성나게 하고 들뜨게 하지만 말을 들이받느라 지치고 찌르개와 작살로 다쳐서 더욱 힘빠지게 한다.

어떤 때는 마타도르가 그의 작살로 찌르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그는 다른 작살찌르미보다 다르게 아름답게 꾸민다.

 

 

 

 

 


마지막 고비는 물레타(막대에 단 붉은 천)와 칼을 가지고 마타도르가 다시 들어간다.

붉은 천이 소를 성나게 한다고 잘못 알려지고 있다.

왜냐하면 소는 빛깔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의 피를 가리려고 붉은 빛으로 하지않았나 생각된다.

소는 눈이 옆에 달려있기 때문에 앞 3저자(미터)가 안 보이는 곳이란다.

이곳에 서서 물레타만 소의 보이는 곳에 흔들어 움직이는 것에 재빨리 되뮈는 소의 버릇을 써먹어

소를 지쳐 쓰러뜨리고 또한 멋있게 보이도록 또는 잇따라 찌르게( faena) 소가 들이받도록 꼬이는데 쓴다.

  

 

 

 

 

마타도르는 소와의 사이를 좁히며 아슬아슬한 솜씨를 보이는데,

소의 힘이 빠져 이제 끝내야 될 때가 되면 어깨뼈 사이의 5온남저자(cm)의 틈을 ‘바늘구멍’이라 하며

이곳을 칼로 재발리 찌르면 소의 염통까지 이르러 바로 숨이 멎는다고 한다.

그런데 첫 겨루기에서 마타도르가 눈깜짝 사이에 숫소에 받쳐버렸다.

숫소가 거듭 쓰러진 마타도르를 받으려 할 때 다른 도우미싸움꾼들이 들어가 숫소를 다른 곳으로 꾀어내고 마타도를 벗어나게 했다.

 마타도르의 물레타가 땅에 떨어져 있고, 마타도르(오른쪽에서 세째 사람)는 다리를 절며 서 있다.

 

그 칼은  "estoque"라 불리고 칼로 찌르는 것은  estocada라 하는데,

마타도르가 처음에 구경꾼들을 즐겁게 하려고 할 때에는 나무나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가볍고 다루기 쉬운 거짓칼(estoque simulado)을 쓰고,

소를 죽이려 할 때에는 참 쇠칼(estoque de verdad)로 바꾸어 찌른다.

많은 마대에 숫소는 한축에 꿰뚫리지 않고 여러 축 되풀이 찔러야 쓰러져 죽는다.

 마타도르가 칼로 찌르고 숫소가 쓰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몇째 싸움에서인가 마타도르가 싸우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구경꾼 가운데 비웃는 소리(야유)같은 것이 들렸던 것 같고,

다른 쪽에서는 그를 두둔하는 것인지 또 일어나 그 쪽을 바라보고 소리를 지르니,

서로 소리를 지르며 구경꾼들이 두 쪽으로 갈리어 삿대질과 소리지름으로 맞서는 마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우미가 짧은 칼로 머리골을 찔러 소를 죽인다.

  

 

죽은 숫소는 뿔쪽을 묶어 말인지 노새인지가 끌고 나간다.

 

마타도르가 땅불쑥히 잘 했을 때는 구경꾼들이 손쥬련(수건)을 흔들어 마타도르에게 소의 한 쪽 귀를 주라고 할 손 있다.

그의 솜씨가 뻬어났을 마대에는 두 귀를 받을 손 있다.

어떤 더 시골의 사움터에서는 꼬리까지 주어질 손 있다.

 

매우 드물게 구경꾼들이나 마타도르가 숫소가 아주 꺼지게(용감하게) 싸웠다고 생각하면,

 싸움다스리미(enent's president)한테 그 소를 봐주도록 바랄 손 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그 소는  목숨을 붙여 살아서 싸움터를 떠나 제가 온 삶터로 돌아가 씨말로 남은 삶을 살게 된다. 

 

그날에도 한 마리를 살리는 마대가 있어,

그 소를 불러들이려면 이렇게 여러 마리의 소들을 풀어 함께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프랑코 막부림때에는 숫소싸움은 스페인다운 것으로 나라에서 떠받들었다.

따라서 날알내셈(민주주의)나라가 되면 시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늦게 모듬날알(사회민주)다슬말(정부) 땅불쑥히 ,José Luis Rodríguez Zapatero다슬말에서 숫소싸움을 나쁘다했고 14살 밑에 아이들은 싸움에 가서는 안되고 나랏멀봄에서는 숫소싸움을 내보내서는 안되거나 줄여서 내보내야 했다.
바로셀로나에선 오랜 내려옴과 좋아함을 무릅쓰고, 짐승힘 힘씀(동물권리 운동)에 따라, 

2010해 숫소싸움은 까딸루냐에서 해서는 안되도록 되었다.

까는이들은 이것이 까딸루냐 홀로섬과 이어져 있다고 한다.

 

스페인 임금집안은 여기에 뜻이 갈라져 있다.

숫소싸음을 싫어함을 숨기지 않는 소피아 임금각시로부터

그의 해야할 일로서 가끔 숫소싸움터 임금자리에서 숫소싸움을 맡아보는 카를로스임금까지;

숫소싸움을 좋아해서 아버지를 따라 임금집안자리에 또는 홀로 여느 자리에 앉아 보는 엘레나 난이(공주) 까지.

임금은 "EU가 숫소싸움을 막는 날이 스페인이 EU를 떠나는 날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숫소싸움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는

내려옴(전통)은 스페인 발자취에 깊이 뿌리박은 하나의 내라꼴(예술형태)이라고 말하는

마리아노 라조이( Mariano Rajoy)으뜸말앞(수상)이 있다.

그리하여 나랏멀봄에서 숫소싸움을 6해동안 내보내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 없어지고,

2012래 9달부터 TVE의 저녁 6때 내려오는 때에 숫소싸움을 날로 보여지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공차기를 좋아하지만

공차는 사람보다 숫소싸움하는 사람을 훨씬 좋아하고

벌이도 엄청 많다고 한다.

또한 소가 불쌍하지 않느냐 하는데

먹이로 쓰이는 소는 한 해동안 우리에 가두어 키우다 잡아먹는데,

싸움소는 들메에서 4~5해 마음껏 뛰놀며 살다가 싸움을 하는데

어느 소가 더 불쌍하냐고 한다.

숫소싸움 한 사람이 숫소와 싸우는 줄 알았는데,

일곱사람이 숫소 한 마리를 놓고 싸우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고 옆사람이 말한다.

스페인에 왔으니 한 축 보았지만, 그렇게 즐길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힘차게 달리는 숫소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